저유가에도 불구하고 세계 석유 수요는 계속 둔화되고 있다.

개도국 수요가 성장둔화와 에너지 보조금 축소, 환율상승 등으로 제약받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트 오일의 견조한 생산과 OPEC의 증산이 이어지면서 지난해부터 불거진 석유 공급과잉 국면이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게다가 이란 제재 해제는 공급과잉 개선을 지연시키면서 유가의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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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4월에 배럴당 65달러에 육박하던 유가가 8월 25일에 42달러로 하락했고 이후 9 월초에는 50달러 가까이 솟구쳤다.
불과 1주일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유가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6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후 최대 상승률(8월 27일 브렌트유 1일 10.2% 상승)로 반등했다.
이러한 유가 변동성 확대의 배경에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석유 공급의 불확실성 확대가 지목되고 있다.
저유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던 중국과 아시아 신흥국 등 석유 순수입국이 주식 폭락과 환율 급등 등을 겪으면서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 우려감이 높아졌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공급측 면에서는 베네수엘라가 긴급 OPEC 회의를 요청 하면서 OPEC의 감산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주요 산유국인 이란은 핵 협상 타결로 석유 공급을 늘릴 태세다.
최근 금리와 지준율 인하 조치로 중국주식시장이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자 유가가 바닥을 쳤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석유 공급과잉이 유가를 억누를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힘을 받고 있다.


가격 하락은 수요 증가와 공급 위축을 유발한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석유시장은 유가 하락에도 수급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가가 본격 하락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원유 재고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그림 1> 참조).
유가가 2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저유가에도 석유 수요 둔화 지속


유가가 급락했지만 세계 석유 수요의 증가세는 계속 둔화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선진국의 석유 수요가 소폭 증가세로 반등했지만, 개도국의 석유 수요 증가량(74만 b/d)은 지난해 상반기 증가량(150만 b/d)의 절반 수준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그림 2> 참조).


개도국의 석유 수요가 크게 둔화된 이유는 성장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 보조금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선진국의 소비성향 위축으로 내구재 수요 회복이 지연되면서 세계 교역이 위축되고 있고, 이로 인해 원자재 수요 를 견인해 온 개도국 경제가 구조적인 성장둔화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을 비롯해 산유국인 UAE도 재정 건전성 강화와 에너지 소비 효율화 등을 목표로 에너지 보조금을 축소하고 있다.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휘발유 가격의 하락 폭이 작게 나타나, 저유가의 석유 수요 촉진 효과가 제한되고 있다.
러시아와 브라질 등 석유 소비가 많은 자원 수출국의 경제 부진도 석유 수요를 제약하고 있다.
향후에도 세계경제가 뚜렷이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임에 따라 석유 수요의 둔화 기조가 계속될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성장세가 완만한 수준에 그치면서 개도국의 성장 둔화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석유 등 원자재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은 8월 제조업 PMI가 47.3으로 3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성장활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러시아, 브라질 등 주요 산유국의 경제침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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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석유 수요 증가량이 올해 160만 b/d에서 내년 140만 b/d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전 (2010년부터 4년간 석유 수요 증가율의 평균, 2%) 보다 낮은 증가세 (1.4%)가 예상되고 있다.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에는 자금이탈과 환율절하 등이 나타나면서 신흥국의 석유 구매력이 더욱 약화, 수요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 공급경쟁 장기화 조짐

저유가와 수요 둔화 속에서도 미국의 타이트 오일과 중동 산유국 간의 석유 공급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 타이트 오일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고 중동 산유국의 석유 공급은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유가 급락을 촉발한 장본인이자 저유가에 취약한 유종으로 인식되던 미국 타이트 오일은 유가 급락으로 리그 수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생산량이 줄지는 않았다(<그림 3> 참조).


이는 석유개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 효율화에 노력하는 가운데, 유전 개발 위축으로 시추와 개발 등 유전 개발 서비스 비용이 하락하고 원유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이트 오일의 생산성은 유가 하락 이후 더욱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그림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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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당 60달러 중반으로 추산되던 미국 타이트 오일의 평균 생산단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노스다코타주 일부 유전지역(Dunn, Mckenzie, Mountrail, Williams)에서는 손익분기가격(breakeven price)이 배럴당 20~40 달러로 하향되었다.
최근 골드만 삭스는 타이트 오일의 한계비용 (cash cost)을 배럴당 20~25 달러로 집계한 바 있다.
타이트 오일 생산이 예전과 같이 빠르게 늘어나기는 힘들겠지만, 7월부터 타이트 오일 개발이 다시 늘어나는 등 현재 수준의 타이트 오일 생산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서 연간 1백만 b/d 가까이 늘어오던 타이트 오일의 추가 증산이 거의 멈춘 것은 국제 석유시장에 무시할 수 없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타이트 오일의 증산추세는 멈추었지만, OPEC은 시장 점유율 사수를 위해 증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2분기 에 늘어난 OPEC의 산유량은 110만 b/d(전기 대비)에 달해, 3년만에 최대 증산을 기록했다 (<그림 5> 참조).

특히 중동 산유국들은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에 원유 수출을 늘리고 있어서 공급 경쟁에 더욱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동 산유국이 감산을 할 경우 유가가 상승할 수 있겠지만, 유가가 상승하면 미국 타이트 오일의 증산이 재개되고 러시아 원유의 동진이 탄력을 받으면서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축소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알제리 등 저유가에 취약한 일부 OPEC 회원국들이 감산을 요구하고는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이라크 등은 공급경쟁에 적극적이다.


비 OPEC 회원국과의 감산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한, 시장 경쟁 체제에 맡긴다는 심산이다.
원유 생산단가가 낮아 유가하락에 상대적으로 내성이 강한 중동 산유국들도 유가 하락 폭이 커 정부재정이 부실해지면서 국채발행과 조세제도 정비 등을 통해 경제체질을 저유가 상황에 맞춰 변화시키고 있다.
저유가와 석유 공급경쟁의 장기화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란 제재 해제로 공급과잉 개선 지연

수요 둔화와 공급 확대로 인한 석유 공급과잉 국면은 최소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불거진 석유 공급과잉이 미국 타이트 오일 때문 이라면, 올해와 내년의 공급과잉은 OPEC이 주도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내년 하반기까지 초과공급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그림 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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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완만하게나마 석유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저유가로 비OPEC의 증산 여력이 약화되면서 올해 2분기에 300만 b/d 규모로 늘어난 초과공급 수준은 점진적으로 줄어 들 것이다.
더딘 공급과잉 개선과 높은 원유 재고 수준이 유가를 당분간 현 수준에 머물게 할 것이다.
유가가 60달러 이상으로 상승할 경우에는, 시추부터 생산까지 수 개월내로 이뤄지는 미국 타이트 오일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유가 상승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 소시에떼제네랄 등 주요 에너지 연구기관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내년 유가 예상치를 최근 중국 성장불안과 OPEC의 증산 지속 등을 이유로 50달러대(브렌트유 기준) 정도로 하향 수정하고 있다.
브렌트유의 내년 평균 선물가격도 7월초에 67달러에서 최근 56달러로 하락했다(<그림 7> 참조).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에는 수요 둔화 우려와 원유 선물시장에서의 투기자금 이탈 등으로 인해 유가의 단기적 하락압력도 커질 것이다.
이란이 본격적으로 증산에 나설 경우에는 국제유가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이란 핵 합의의 미의회 통과가 제재 해제의 주요 난관 으로 지목되었으나, 최근 미 상원의원 34명이 지지를 밝히면서 이란 제재 해제의 가능성이 높아 졌다.
현재 진행 중인 핵 사찰을 무사히 마치고 12 월에 제재 해제가 결정된다면 내년에 이란산 원유가 국제 석유시장에 늘어 나게 된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2012년 7월 서방의 원유 금수조치 이후 125만 b/d(2011년 405만 b/d, 현재 280만 b/d) 줄어들었다.
미국에너지 정보청과 CERA 등은 내년 하반기에 이란의 증산 규모가 30~70만 b/d로 완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유가에 상관없이 증산할 의지를 보이면서 제재 해제 후 1주일 안에 원유 50만 b/d, 1개월 내에 100만 b/d를 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에너지 기구는 2003년 베네수엘라의 석유공급 차질과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인한 리비아의 석유공급 차질이 3개월만에 정상화된 것을 예로 들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원유 수송 인프라와 유전의 상태 등이 이란의 원유 증산 속도를 좌우할 것이다.
이란이 내년 하반기에 최대 70만 b/d 정도 증산할 경우, 내년도의 평균 석유 공급과잉 규모는 110 만 b/d 정도로 올해의 193만 b/d 보다는 줄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너지정보청은 이란 증산이 국제유가의 5~15달러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경우 내년의 연평균 유가가 40달러대 중후반으로 낮아질 수 있다.
예측이 힘든 산유국 정세불안에 따른 유가 급변동 리스크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내년에도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에너지 비축 확대 등의 기회를 모색하면서도 저유가 장기화에 대비하는 노력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
에너지 가격의 약세, 산유국 경제의 불안감 상승, 자원개발 관련 산업의 침체 지속 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본고는 LG경제연구원 이광우 책임연구원의 발표자료를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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